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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섹스&시티> 6년간의 질문과 해답

말혼자 2004. 6. 27. 14:08

<섹스&시티> 6년간의 질문과 해답

“7시30분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지난 연애는 가능하면 빨리 지워버리는 도시. 더이상 이곳에는 <티파니에서 아침을>도 <어페어 투 리멤버>도 없다.”

“뉴욕 30대 남자 중에 우리가 사귈만한 남자들은 더 이상 없어. 줄리아니(전 뉴욕시장)가 홈리스들을 처리할 때 다 같이 쓸어버렸다니까”

지난 1998년, 로맨스에 대한 잔인한 사형선고와 함께 그 시작을 알린 HBO 시리즈 <섹스&시티>가 2004년 드디어 6년간의 긴 질문을 끝냈다. 기획자인 대런 스타는 “이 시리즈가 섹스가 가미된 90년대판 <메리 타일러 무어 쇼>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고 지난 6년간 <섹스&시티>는 단순히 성공한 TV쇼의 위상을 뛰어넘는, 동시대의 여성들의 내면과 외면을 한순간에 변화시키는 ‘빅뱅’에 가까운 폭발력을 보여주었다. 그 파장은 맨해튼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국적 다른 여성들의 목에 캐리의 네임플레이트 목걸이가 출렁거렸고, 주인공들의 아슬아슬한 농담은 몇십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에후드 바락 전 총리는 재신임을 묻는 선거에서 패하자 “이제 <섹스&시티>를 볼 시간을 좀더 낼 수 있겠다”는 농담을 던졌다.

<섹스&시티>는 <프렌즈>도 <밴드 오브 브라더스> <베이워치>도 아니었다. <프렌즈>처럼 남자친구와 공감하며 함께 웃을 수 없었고, <밴드 오브 브라더스>처럼 테스토스테론을 녹여 무기를 만들지도 않았다. 다양한 가슴크기를 가진 비키니 아가씨들 대신 인종도, 국적도, 직업도, 크기도, 체위도 다양한 남자들이 에피소드마다 바뀌어가며 등장했다. 그렇게 이 에스트로겐으로 가득 찬 맹랑한 시리즈는 오로지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은밀한 사랑방이었다. 물론 <섹스&시티>는 제목답게 ‘섹스’에 대한 온갖 가지 이야기를 까발렸고, “지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뉴욕에 대한 연가(戀歌)를 쉬지 않고 불러댔다. 하지만 초창기 머리색도 성격도 취향도 다른 4종류의 싱글여성들을 전시하는 팬시한 기획상품처럼 보여졌던 <섹스&시티>는, 노골적인 성적 대화들과 발랄한 조크, 파격적인 패션으로 포장되었던 이 캐주얼한 드라마는, 마지막 6시즌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정체가 꽤나 진지한 휴먼스토리임을 드러낸다. 사랑에 대한, 관계에 대한, 인생에 대한 ‘진짜’ 질문을 던지는 <섹스&시티>의 6년을 돌아보며 이 걸출한 시리즈가 남긴 것을, 총 94편의 에피소드들에서 추출한 ‘싱글생활 6계명’과 함께 담아낸다.

△ 샬롯, 사만다, 미란다, 캐리(왼쪽부터)

“여자가 남자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바로 침대 위야. 만약 우리가 남자들에게 영구히 오럴 섹스를 할 수 있다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꺼야.” _사만다

“들어봐, 심지어 나는 남자친구의 도어맨에게서 이별통고를 받은 적도 있었다니까. ‘미안해요, 홉스양. 조나단씨는 다시는 당신을 만나러 안올꺼예요” _미란다

“누가 저 작은 섬(맨하탄)이 우리의 그 많은 남자친구들을 다 수용 할 만큼 큰 곳이라고 상상할 수 있겠니?” _미란다

“남자한테 ‘난 니가 싫어’라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섹스를 즐길 수 있지만, ‘난 널 사랑해’라고 말하면 아마 넌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을 꺼야.” _사만다

여자들의 욕망에 대한 재교육 프로그램

“자위할 때 어떤 남자를 상상해?” “(입모아) 러셀 크로!” “아, 러셀 크로 전엔 도대체 누굴 생각하면서 자위를 했던거야?” “(다시한번 입을 모아) 조지 클루니!!”

“뭐 저런 여자들이 다 있어?” 처음 그녀들을 만났을 때를 기억해본다. 긴 얼굴에 요란한 옷차림의 캐리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고, 얌전하게 생긴 샬롯은 엉뚱하기 그지없었으며, 섹스의 화신인 사만다는 멋있다 못해 무섭게 느껴졌고, 빨강머리에 “시니컬의 터치스톤”이라 부를 만한 미란다는 지나치게 딱딱했다. 게다가 이 여자들이 나누는 노골적인 대화라니! 맨해튼과 인구밀도를 제외하고 공유할 것이라고는 고양이 오줌만큼도 없는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들에겐, 알아도 말하지 말아야 할, 들어도 안 들은 척해야 하는, 그런 이야기였다. 키스할 때 얼굴 가득 침을 묻히는 남자, 오럴섹스 뒤에 키스하는 남자, 하다가 꾸벅꾸벅 조는 남자, 평소엔 얌전하다가도 침대에만 누우면 입에 담을 수 욕설을 내뿜는 남자, 트리플섹스를 강요하는 남자, 너무 작거나, 너무 큰 남자. 침대 밑에서 썩어문드러졌을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대낮의 다운타운 레스토랑에서 울려퍼진다. 이 네 여자들의 노골적인 수다는, 중·고생들이 모여 순결선언을 하고, 처녀막복원수술이 여전히 존재하는 대한민국 여성들이 받아들이기엔 뭔가 지나치게 진보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유료케이블시대의 도래와 이 땅에 상륙한 <섹스&시티>는 속닥거리는 입소문을 타고 그 세를 빠르게 확장해나갔다. 커피숍에 모여 캐리의 새로운 남자 이야기나 사만다의 엽기적인 애정행각을 이야기하며 웃음을 터트리는 그룹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녀들이 입고 나온 옷과 들고 나온 가방, 신고 나온 구두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일본 패션으로 도배되었던 여성잡지들은 앞다투어 뉴욕스타일에 안테나를 세웠고, 심지어 이 시리즈의 이름을 딴 과자도 등장했다. 이런 와중에 <싱글즈 인 서울>처럼 작위적인 설정만을 가져온, 영혼없는 프로그램이 탄생하는 비극과 함께, <결혼하고 싶은 여자>처럼 <섹스&시티>에 상당 부분 젖줄을 대고 있는 국산드라마가 기획되기도 했다.

<섹스&시티>는 여성들을 위한 ‘성교육 지침서 Vol.2’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난 몇십년간 착각과 몰이해 속에 살아왔던 남성들에게 여자들의 욕망과 본질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지점보다 정확하게 5cm 아래 있음”을 알려주는 재교육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스스로를 “동물”이라고 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변명의 말로 즐겨썼던 남자들에게 여자들 역시 “섹스하고 싶어 미쳐버리는 순간”이 솔찮게 찾아오는 똑같은 동물임을, 대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음담패설로 저하시키는 대신 위트있는 유머로 끌어올릴 수 있는 ‘지적인 동물’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가족들과 사는 남자하고 데이트를 할 방법은 전혀 없단 말이지? ” “음… 윌리엄 왕자 정도?”

또한 <섹스&시티>는 그동안 남성에 의해 대상화되었던 여성과 여성의 몸을 주체로 뒤바꾸어놓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한 에피소드에서 일회용으로 소비되거나, 중요 캐릭터라고 할지라도 이야기를 매듭짓지 못한 채 그 시즌에서 퇴장하기 일쑤였다. 대신 그간 남성적인 시선에 포획되어 악녀 혹은 성녀로 이분화되던 여성캐릭터들은 한 에피소드 안에서도 100번도 더 돌변할 수 있는 미묘하고 예민한 존재로 그려졌다. 한편 서른을 넘긴 싱글여성에 대한 개념 역시 ‘불쌍하고 애처로운 사회의 잉여물들’이 아니라 “멋진 집, 멋진 친구, 멋진 섹스”를 즐기며 “시간을 두고 진짜 짝을 찾아가는 사람들”로 바꾸어놓았다. 이는 <섹스&시티>의 원작자인 캔디스 부시넬을 비롯해 작가군단이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심지어 이 시리즈의 우뇌인 공동프로듀서이자 작가인 마이클 패트릭 킹이 게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지난 6년간 셀 수 없는 많은 남자들이 이 네 여자의 침실을 오갔고, 그 안에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해답, 끊이지 않는 유머가 탄생되었다. 1, 2시즌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다큐멘터리성 인터뷰 장면들이나,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거는 독백은 시즌을 더하면서 점점 사라졌다. 어느덧 주변의 누군가는 샬롯이었고, 미란다였고, 아주 소수는 사만다였으며, 자신은 캐리가 되었다. 그렇게 시청자들과 캐릭터간의 동일화가 이루어진 이후부터는 ‘너희도 그렇지 않니’하며 동의를 구하던 카메라의 눈은 각각의 캐릭터 내로 충실하게 잠입해 들어갔고 3시즌 이후부터는 보편적인 질문보다는 더 깊고 구체적인 질문들이 던져지기 시작했다.

구찌도, 오럴섹스도, 보그도 안녕

물론 6년 동안 변함없는 것은 단 한컷도 그냥 흘릴 것 없는 깔끔하고 경제적인 연출과 뛰어난 구성이다. 30분도 채 안 되는 한편의 에피소드가 소화해내는 내용은 정교한 생략 속에 매우 빠른 진행을 보인다(한 에피소드 안에서 어떤 커플은 만나고, 결혼식까지 연다!). 때론 타악기의 신명나는 리듬 속에, 때론 현악기의 서정적인 멜로디 속에 질감도 박자도 다른 이야기들이 자유자재로 교차된다. 특히 거의 매 회 등장하는 바, 레스토랑신에서 4명의 여자사이를 날아다니는 컷 편집의 속도감은 아찔할 정도다. 물론 이미 수다가 가지는 빠른 스피드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 속도는 쉽게 인식되지 못한다.

“난 빅을 길들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가 날 길들이지 못한 것이다. 세상엔 길들일 수 없는 여자들도 있다. 그들은 자유롭게 달릴 것이다. 자신들과 미친 듯이 달려 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그러나 그간 <섹스&시티>에 대한 관심과 평가는 대부분 이들의 범상치 않은 패션과 독한 성적농담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천하의 사만다가 남자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캐리가 더이상 아슬아슬한 의상을 입지 않으며, 애엄마가 된 미란다가 농담을 내뱉을 정신을 똥기저귀 속에 빠트렸을 때, 많은 이들은 이 시리즈의 종말을 선언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란 결코 어떤 색깔이나 카테고리 내에서만 숨쉬지 않는다. 어쩌면 이들을 끝까지 쿨한 언니들로 내버려두었다면 <섹스&시티>는 도시의 신화로 박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4명의 여자는 새로운 도시의 여신들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땅 위로 발을 내디딘다. 유방암에 걸린 빡빡머리의 사만다가 가발을 벗어던지며 해방될 때, 캐리가 꿈의 도시 파리를 도망치듯 떠나올 때, 불임으로 고생하던 샬롯이 중국에서 날아온 입양허락서에 감격의 눈물을 흘릴 때, 미란다가 치매에 걸려 쓰레기통을 뒤지는 시어머니를 찾아 맨해튼 거리를 내달릴 때, 마놀로 블라닉도, 지미 츄도, 구찌도, 디오르도, 오럴섹스도, 티보도, 코스모폴리탄도, 보그도 안녕을 고한다. 이 잘난 여자들이 결국 고단한 삶과 악수하는 순간, 지난 6년간의 환상은 깨져버린다. 그것은 누군가에겐 싱글생활 방어전을 이겨내지 못한 여성들의 KO패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섹스&시티>는 ‘쿨’함을 포기하고 ‘진짜’를 선택한다. ‘섹스’와 ‘시티’ 사이에 놓인 ‘&’, 여기에 숨어 있는 여성의 삶과 선택을 경청한다. 마지막 시즌, 뉴욕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캐리는 “이제 질문을 그만둬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자문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자신이 결코 뉴욕의 아파트도, 가족 같은 친구들도, 낡은 노트북도, 삶에 대한 질문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6년 동안, 30대 초반이었던 아가씨들은 어느덧 “공포의 나이”인 마흔둘이나 마흔다섯을 걱정해야 하는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한 시대가 끝나고”(It’s the end of an era), 시리즈도 끝났다. 하지만 <섹스&시티>와 6년을 보낸 지금, 질문은 누군가에 의해 계속 될 것이다. 그들이 싱글이건, 유부녀건, 이혼녀건, 미혼모건, 혹은 양성이건, 레즈비언이건, 죽지 않는 한. ‘여자’로 태어났고,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한.

글 백은하/ 자유기고가 lucilife@naver.com

캐리, 사만다, 미란다, 샬롯이 온몸으로 써내려 간 싱글생활 6계명


1. 실수하라, 고로 너는 존재한다

“사실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건 실수들이 아닐까?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사랑에 빠진다거나 아기를 갖거나 현재의 우리로 있지 못할 테니까.” _캐리

그녀들은 똑같은 옷은 두번 다시 입지 않지만, 똑같은 실수는 열번이고 되풀이한다. 캐리는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거라 다짐하던 미스터 빅의 키스를 매번 받아들이고, 미란다는 고환암으로 더이상 ‘쌍방울’일 수 없는 스티브에게 ‘자비의 섹스’(merci fuck)를 선사한 끝에 임신한다. 결혼의 쓴맛을 이미 맛본 샬롯도 두 번째 불구덩이 속으로 자신을 던져넣는다. 그렇게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조건반사의 희생물들”이자 ‘파블로프의 개’들이다. 하지만 삶은 실수라는 벽돌로 지어진 구조물이다. 그들은 실수를 통해 성숙해가고, 드라마는 실수를 통해 진행되며, 시청자들은 그들의 실수를 통해 안도감을 얻는다. 하바드를 졸업한 변호사도, 잘 나가는 칼럼니스트도, 똑똑한 큐레이터도 실수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간다. 우리가 그러하듯이. Coulda woulda shoulda!


2. 과거를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관계가 끝나면 유령도 떨쳐낼 수 있을까? 아님 과거라는 망령에 영영 홀려 있어야 할까?” _캐리

과연 94개의 에피소드 동안 캐리를, 미란다를, 샬롯, 사만다를(!)을 거쳐간 남자가 몇명이나 될까? 이들이 길을 가다 옛 남자친구와, 게다가 “구질구질한 최악의 모습으로 만날 확률”은 어니언링을 먹다가 프렌치 프라이 조각을 발견하는 것만큼 높다. 그러나 대부분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그를 발견하고 다른 골목으로 피해가거나, 황급히 방향을 틀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섹스& 시티>는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유령과 정면 충돌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캐리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에이단과 맞닥뜨리고 난 이후에야 그에 대한 오랜 체증에서 벗어나게 되고, 22살에 나눈 원나잇스탠드의 결과로 낙태수술을 받은 트라우마는 결국 그 웨이터가 자신의 존재조차 기억 못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치유된다. 그렇게 캐리는 그때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닫고, “13살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아기”와 제대로 이별한다. 심지어 6시즌에는 “부모님이 무서워서 키스까지만 진도를 나간” 고등학교 첫사랑(데이비드 듀코브니)까지 등장해 핑크빛으로 덮어두었던 ‘EX-FILE’(전 애인 파일)을 첫장부터 잔인하게 재기술한다.


3. ‘나’를 잃으면 ‘그’도 잃을지어다

“리차드,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난 나를 더 사랑해요.” _사만다

<섹스&시티>는 결코 독립적인 여성이 되는 법이 남자와의 사랑을 끊고 초콜릿 케이크나 바이브레이터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고 권하진 않는다. 대신 ‘두 영혼, 하나의 생각’이라고 적혀 있는 약혼식 초대장을 보고 “사람은 둘인인데 생각이 하나라면 문제가 있는 거야”라고 반박한다. 리차드가 바람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몇십층을 뛰어올라온 사만다는 이렇게 의심 가득한 관계를 더는 지속시킬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를 사랑하지만,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목걸이를 잃어버렸다 찾은 캐리 역시 더이상 자신이 파리에 머무를 이유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녀의 귀향은 파리에 왕자님처럼 찾아온 빅의 깜짝 등장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빅은 또다시 심장을 닫고 이기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를 일이다. 캐리도, 우리도 더이상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도시 연애의 신화’ 따위에 속아넘어갈 만큼 순진하진 않다. 하지만 캐리는 그 선택에 대해 어떤 원망도 후회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목에 다시 걸려진, 목걸이에 쓰여진 여섯 글자는 ‘Mr. Big’이 아니라 ‘Carrie’였기 때문에.


4. 결혼은 시작도 끝도 아니다

“왜 우리는 결혼을 해야 하지? 혼자 죽기 싫어서 같은 이유 말고.” _미란다

“레즈비언이 될지언정” 커플이 되어야만 주류로 편입될 수 있는 보수적인 사회. 하지만 이 4명의 여자들은 누구도 떨어지는 부케를 잡으려고 허공을 향해 손을 뻗진 않았다. 또한 유부녀, 유부남을 향해 전쟁을 선포한 적도 없다. 그저 ‘노아의 방주’의 일원이 되지 못한 자신을 ‘하자있는 인간’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고 말할 뿐이다. 4시즌 말 ‘미스터 퍼펙트’(혹은 Mr. too perfect)인 에이단에게 또다시 이별의 아픔을 안겨준 캐리의 선택은 쉽게 용납하기 힘든 것이었다. 100만원도 안 되는 은행잔고에, 대출도 어려운 36살 싱글에겐 참 간도 큰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옳은 선택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결코 ‘좋은 사람’이 ‘바로 그 사람’(The one)이란 법은 없는 것이다. 반대로 미란다는 모든 면에서 “전혀 수준이 맞지 않는” 스티브를 사랑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고 그와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다. “완벽한 남자, 완벽한 결혼, 완벽한 가정”을 꿈꾸었던 샬롯은 대머리에, 유대인에, ‘털북숭이 해리’(hairy harry)와 결혼한다. 6시즌의 마지막, 네 친구들 중 둘은 결혼을 했고, 둘은 싱글로 남았다. 이후 모두 결혼을 하게 될지, 모두 다시 혼자가 될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결혼은 시작도 끝도 아니다. 그저 과정일 뿐이다.


5. 친구들을 거룩히 지켜라

“어쩌면 우리가 천생연분일지 몰라, 멋진 남자들은 재미로 만나는 거고, 우리가 서로의 천생연분이 아닐까?” _샬롯

싱글 뉴요커. 그들에게 친구는, 어머니이자, 언니이자, 동생이다. 우리는 안다. 35살의 노처녀의 손을 잡고 장례식에서 함께 행진해줄 사람도, 미혼모가 되는 순간에 기꺼이 이모가 되겠다고 나서줄 사람도, 방금 손톱정리 받은 손으로 루프를 꺼내줄 사람도, 혼자 죽은 채 고양이에게 얼굴 반쪽을 뜯길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일 때 전화를 받아줄, 어깨를 내줄, 등을 두드려줄 사람도, 친구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피로 맺어진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만들어낸 가족”인 친구들은 고통스러운 순간에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고, 세상에서 가장 독한 조크로 그 아픔을 얼얼하게 만든다. 로맨틱한 밤을 놓치거나 말거나, 큰 맘 먹고 장만한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에 양수가 쏟아져 망가지거나 말거나, 그들은 남편이 아니라 친구의 손을 잡고 아기를 낳는다.


6. 그래도, 사랑만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안 나. 내가 누군가를 정말 좋아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 난 단지… 그때 기분만이 생각나.” _캐리

자신의 칼럼을 책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은 캐리는 “당신은 사랑에 대해 긍정적인가요? 부정적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캐리는 잠시 망설인다. “과연, 나는 사랑을 믿는가.” 연애의 낭만이 현실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하고, 결국 진절머리나는 아픈 사랑의 기억을 얻고나면 심장은 스스로 방어기제를 만들게 마련이다. 사랑을 부정함으로써 실연을 극복한다. 하지만 캐리도, 샬롯도, 미란다도 계속 잃을 걸 알면서도 “사랑이란 주식에 투자”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이 징그러운 사랑은 “침대의 네 귀퉁이를 하도 많이 문질러서 이제는 완전히 이쑤시개가 되어버린”, 섹스에서는 남자처럼 진화해버린 사만다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저 하룻밤 상태처럼 보였던 스미스로부터 사만다는 난생처음 믿음과 위로를 경험한다. 이 젊고 믿음직한 청년은 유방암으로 머리가 빠지는 사만다 앞에서 자신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시키고, 그동안 누구도 점령하지 못했던 사만다의 ‘손의 처녀성’을 차지한다. 4명의 주인공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을 찾는 이 시리즈의 결론이 나이브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캐리가 산처럼 쌓인 마놀로 블라닉 구두에 둘러싸인 호호할머니가 되어, 마지막 숨을 거두어야 전복적이었을까?

1시즌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캐리는 떠나가는 빅에게 묻는다. “당신, 진짜 사랑을 해본 적이 있어요?” 시 대신 이메일을 쓰고, 저지방 아이스크림을 먹고, 기름기가 제거된 시대에 사랑을 나누는 도시의 남녀에게 사랑은 정말 있는 걸까? 지난 6년 동안 이 질문에 대한 <섹스&시티>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좆나 당연하고 말고!”(abso- fucking-lutely!). <섹스& 시티>는 “사랑해”라는 고백이 터부시되어버린 시대에, 격렬한 몸동작과 독한 언어로 사랑의 존재를 증명시켜준, 가장 강력한 부정을 통해 가장 강력한 긍정을 이끌어낸 드라마다.

백은하/ 자유기고가 lucil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