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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쿨한 언니들,침실로 돌아오다 <섹스 & 시티>

말혼자 2004. 6. 27. 14:10

쿨한 언니들,침실로 돌아오다 <섹스 & 시티> [1]

5시즌 방영 시작한 <섹스 & 시티>,
세계 여성들을 사로잡은 초특급 ‘음담패설’의 비밀

아슬아슬한 드레스를 입고 밤거리 사냥에 나서는 네 여자 이야기, <섹스 & 시티> 다섯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됐다. 케이블 채널 캐치온에서 금요일마다 만날 수 있는 <섹스 & 시티>는 원하는 건 무엇이라도 얻을 수 있는 뉴욕에서의 삶을 향한 동경과 함께 여자도 섹스와 담배와 술을 좋아할 수 있다는 마음의 위안을 몰고 전세계 여성을 강타했다. 정면으로 가슴을 드러내고 정면으로 욕망을 과시하는 여자들, 무리수처럼 끝없이 되풀이되는 섹스 행각을 질리지도 않는 수다로 들려주는 이 여자들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서봤다.

400달러짜리 하이힐을 신는다 해도 흐르는 시간을 밟아 뭉갤 수는 없다. 이십대를 불안하고 나약한 시절이라 비웃었던 삼십대의 독신여성들, <섹스 & 시티>의 캐리와 미란다, 사만다, 샬롯도 “뉴욕에서 결코 결혼할 수 없는 나이”를 맞이하고야 말았다. 3월7일부터 케이블 채널 캐치온에서 방영을 시작한 <섹스 & 시티> 다섯 번째 시즌은 샬롯을 마지막으로 모두 서른여섯을 넘긴 우울한 싱글들의 방황과 넋두리에 골몰하고 있다.

1998년 방영을 시작해 수많은 남성 저널리스트들이 “과연 여자들의 대화란 이런 것이었나”라는 의문을 갖게 한 <섹스 & 시티>. 이 시리즈는 첫 번째 시즌의 에너지를 끝까지 유지하기 힘든 TV시리즈의 약점을 극복하고 “캐릭터들과 함께 진정한 성장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고, “원작보다 나을 뿐 아니라 훨씬 더 풍성하고 깊이있다”는 칭송을 얻어 원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거부했다. 그리고 “여자들은 이 시리즈를 보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다. <섹스 & 시티>는 있는 그대로의 여성을 정확하게 그리기 때문”이라는 현실성까지 달성했다. 2002년 에미상 코미디 시리즈 부문 감독상 트로피 외에도 이 시리즈가 얻어낸 것은 <섹스 & 시티>를 모방하는 수많은 여성들이다. 한밤의 뉴욕 웨스트 첼시 지역을 찾은 <뉴욕타임스>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독신여성들이 너도나도 마티니와 코스모폴리탄을 주문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들이 만난 28살의 패션 홍보담당자는 “뉴욕의 패션은 언제나 재미있고 종잡을 수 없고 펑키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섹스 & 시티> 스타일만 따라한다”는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현실과 드라마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된 것이다.

<섹스 & 시티>는 캔디스 부시넬의 노골적인 칼럼 모음 <섹스 & 시티>를 각색한 시리즈. 이 드라마는 제각기 아파트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커리어우먼들이 섹스와 진정한 관계 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스스로 아끼는 마음을 잃지 않았던, 경쾌한 리듬의 변주곡이었다. 그러나 9·11 테러가 변함없는 오프닝 화면에서 세계무역센터를 지워버렸듯, 어쩔 수 없는 세월은 이들로부터 한밤중 뉴욕의 불빛처럼 반짝이던 전성기를 빼앗아갔다. <섹스 & 시티> 시즌5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마음의 짐과 이별과 아기가 우리 것이기 이전의 날들은 사라져버린 걸까? 우리 안엔 아직도 모험심이 존재하는 걸까?”

뉴욕의 길거리에서 태어나다

<섹스 & 시티> 첫 번째 시즌에는 성공한 칼럼니스트 캐리를 졸졸 따라다니는 이십대 추종자가 등장한다. 풋내기 작가지망생인 그녀는 캐리처럼 유명해질 수 있을까, 캐리처럼 파티에서 몇 마디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돈많고 잘생긴 의사를 낚을 수 있을까,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무작정 캐리를 닮고 싶어한다. 어쩌면 그것은 <섹스 & 시티>에 중독된 많은 여성들이 공유하는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캐리는 명품 중에 명품이 틀림없는 남자를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걸려 있으니까 일단 한번 입어보는 DKNY 드레스처럼” 무심하게 만날 수 있는, 경제력과 명성, 괜찮은 외모를 모두 가진 여자다. 캐리와 비슷하게 훌륭한 세 친구들이 내뱉는 쿨한 대사, 그들을 휘감은 디자이너 의상과 100만명의 매력적인 뉴욕 독신남성들, 그들이 즐기는 새벽 무렵의 나이트클럽과 칵테일 코스모폴리탄. <섹스 & 시티>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으나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을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하면서 시청자들을 매혹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채울 수 없는 갈망에 약오른 여성이라 하더라도 친한 친구들과 밥상 앞에 모여앉아 털어놓는 지난밤 이야기에는 동참할 수 있다. 누구라도 팔(arm)이 큰 남자는 무기(arm)도 크다더라는 속설에 고개를 끄덕이고, 키스 못하는 남자는 상종할 종자가 못된다는 험담에 거리낌없는 동의를 표할 수 있는 것이다.

<섹스 & 시티>는 대단히 화려한 TV시리즈지만, 그 밑에 깔려 있는 전략은 <프렌즈> <윌 & 그레이스>처럼 성공한 90년대 시트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저건 바로 내 이야기야, 저건 바로 나를 비참하게 만든 그 자식 이야기야!”라고 외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당대의 첨단을 걷던 클럽 ‘스튜디오 54’를 드나들며 감각을 갈고 닦은 원작자 캔디스 부시넬은 “나는 처음부터 같은 작업을 해왔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것, 이 거대한 도시에 사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을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잔을 찾아서>의 감독 수잔 세이들먼도 참여한 <섹스 & 시티> 첫 번째 시즌은 이 시리즈가 생생한 뉴욕 길거리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듯 인터뷰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섹스 & 시티>를 연재하고 있는 칼럼니스트 캐리 브래드쇼는 칼럼 소재를 찾고 리서치를 하기 위해 잘 나가는 뉴욕 친구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 사이사이 시리즈의 중요한 캐릭터들도 모습을 보인다. 점심을 먹으면서 미성년자 접근불가의 대화를 나누는 <섹스 & 시티>의 네 주인공은 모두 삼십대 초반의 성공한 여성들. 캐리는 지미 츄와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위해서라면 몇번이라도 카드 한도액에 도전할 수 있는 칼럼니스트다. 그녀는 지적이고 유머감각이 넘치지만, 가난했던 시절 가벼운 지갑으로 양식 대신 <보그>를 살 만큼 패션을 신봉한다. 복잡하고 변덕스럽기로는 캐리와 맞먹을 친구는 변호사인 미란다 홉스다. 십대 때부터 이미 냉소에선 일가를 이뤘던 미란다는 결혼도 동거도 원하지 않으면서, “이 많은 남자와 놀아나고서 어떻게 내가 변호사가 됐는가” 자문할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진다. 미란다가 귀여운 바텐더와 일만 아는 변호사, 로맨스를 꿈꾸는 디자이너 등등을 피렌체 복숭아빛 침실로 끌어들였다고는 해도, 엘리베이터 탈 때마다 파트너가 바뀌는 사만다 존스에게는 필적할 수 없다. 홍보회사를 운영하는 사만다는 다소 감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거의 완벽한 남성형으로 진화한, 뉴욕 여성의 자랑거리다. 그리고 홀로 샬롯이 있다. 큐레이터 샬롯 요크는 긴 갈색의 생머리가 정리해주는 것처럼 “단 한번의 위대한 사랑”이 있다고, 이혼한 뒤에는 “인생엔 딱 두번의 위대한 사랑이 찾아온다”고 믿는 로맨티스트다.


쿨한 언니들,침실로 돌아오다 <섹스 & 시티> [2]

남자들은 몰랐지!

삼십분 안에 완결된 이야기 하나를 뱉어내야 하는 드라마의 한계 때문에, 이들은 여성의 다양한 측면 중에서도 유독 고개를 내미는 특징 몇 가지만 골라 캐리커처로 스케치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설명만으론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비난을 부인할 수 없는 캐릭터를 보완하는 건 에피소드 하나마다 캐리가 던지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 반전과 변화를 거듭하며 흘러가는 네 여자의 뉴욕생활이다. “뉴욕 여성들은 정말 사랑보다는 권력을 택하는 걸까?” “여자의 미모는 지성이나 유머감각보다 중요한가?” “성공한 여자들도 주눅이 들 수밖에 없을 만큼, 우리 주변엔 우리를 기죽게 하는 여자들이 있는 걸까? 그들의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걸까?” 진부해 보일지 몰라도, 어떤 여성도 감히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직접 던지지는 못한다. 심지어 캐리마저 “여자들은 모두 구출받기를 원한다”는 샬롯의 단언에 삼십대 독신여성이라면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일단 질겁한 뒤에야 정겨운 검은색 노트북으로 그 질문을 타이핑할 수 있다.

몇 가지 상황을 빠르게 교차시킨 뒤 질문을 뽑아내고, 캐리의 내레이션을 따라 본격적인 대답찾기에 돌입하는 <섹스 & 시티>의 구조는 모든 여자들이 두려워하는 상황에 맞부딪치는 대리체험을 제공해 공감을 얻었다. 이 시리즈는 또 꾸준히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 후보에 오르고 캐리를 연기한 사라 제시카 파커가 3년 연속 골든글로브 코미디 뮤지컬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작품성을 공인받았으며, 이야기의 현실성을 두고 여러 매체가 대담과 리서치를 시도할 정도로 사회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화제를 모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대담한 노출과 남자들이 몰랐던 음담일 것이다. 네 친구가 사우나를 찾는 <섹스 & 시티> 세 번째 시즌의 한 에피소드는 TV시리즈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한꺼번에 수많은 나체가, 그것도 음모까지 등장한다. 정사신을 도맡는 사만다 역의 킴 캐트럴이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구사하는 파격적인 체위나 “큐피드의 화살이 떠난” 맨해튼에서 게이 클럽만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동성애 예찬은, 제작진이 모른 척할 수만은 없는 상업적인 혐의를 덮어씌웠다.

로맨틱코미디보다 현실적 탈출구를

그러나 <섹스 & 시티>는 섹스라는 앞단어에 함몰되지만은 않는다. 또 하나의 축인 시티, 캐리가 데이트 상대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뉴욕에서 독신여성들은 사랑에 울고 우정에 웃는다. 한 친구가 실연당해 우울해하면 세 친구는 “우리가 진정한 솔메이트”라며 격려하고, 남녀관계에 대한 견해 차이로 “네 그곳은 어떤 남자라도 지도없이 찾아갈 것”이라며 악담을 퍼붓다가도 따뜻한 포옹으로 설전을 끝맺는다. 신기하게도 친구 사이의 삼각관계가 없는 이 시리즈의 프로듀서 대런 스타는 “캐리와 유부남인 옛 애인 빅의 부적절한 섹스를 제외한다면, <섹스 & 시티>에서 유머없는 섹스신은 없다. 가장 진지한 에피소드에선 섹스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변호했다. 사만다의 레즈비언 관계 역시 <섹스 & 시티>가 남녀 사이의 섹스보다는 더불어 살아가는 여자들의 관계에 무게를 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사만다는 남자들이 한번도 주지 않았던 레즈비언 파트너의 배려와 진솔한 애정이 부담스러워 그녀를 떠나고 만다. 게이인 공동 프로듀서이자 메인작가 마이클 패트릭 킹은 “내가 게이의 시선으로 여자들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편견이다. 나는 다만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법을 알 뿐”이라고 말했다. 원작과 달리 단 한번도 남성이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 <섹스 & 시티>는 결혼을 지상목표로 설정하는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판타지 대신 현실적인 탈출구를 모색한다. 그리고 여기엔 귀여운 팁이 하나 더 있다. “<섹스 & 시티>에선 그동안 여자들이 맡았던 역할을 남자가 대신한다. 여기선 남자가 눈요깃감이다. 그리고 대런과 마이클이 남자배우를 고르는 안목은 정말 환상적이다”라는, 사라 제시카 파커의 평이 그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

<섹스 & 시티> 다섯 번째 시즌은 이십대가 그러했듯, 삼십대에도 끝은 보인다는 필연으로 다가가고 있다. 친구들은 <섹스 & 시티>의 쾌감 중 하나였던 솔직한 음담을 더이상 나누지 못할 것이다. 사만다는 “그 남자는 정액 맛이 정말 이상해. 식이요법을 시도해볼까?”라며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이젠 미란다가 시즌4 끝무렵에 출산한 아들 브래디가 유모차에 얹혀 있으므로, “나 그 남자랑 스시를 먹었어(나 그 남자랑 섹스했어)”라고 돌려 말하며 분통을 터뜨려야 한다. 변태 정치인과의 에피소드 제목을 ‘정치적 발기’(Political Erect)라고 붙였던 재기발랄함도 모두 흩어지고 말 거라는 캐리의 암담한 예감과 함께 휘청거리고 있다. 남자가 없어서 감자튀김이나 양말 따위로부터 칼럼 소재를 구해야할 처지로 전락한 캐리는 “보습제처럼 날마다 비관주의로 무장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희망과 믿음이 날마다 무너지는 세상인데,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할까”라고 자문하기도 하고, 노출 중독이 아닐까 의심을 사던 탱크톱 패션 대신 가릴 건 가리자는 스타일로 방향을 선회했다. 캐리는 강박처럼 매달렸던 빅과 너무도 완벽하지만 떠나보내고 만 에이단이 마지막 기회가 아니었을까, 조금 절망한다. 곡절많은 이혼을 거치면서 결혼에 대한 꿈이 송두리째 박살난 샬롯은 더이상 나이 먹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녀에게 서른여섯 번째 생일은 결코 축하해선 안 되는, 서른다섯 번째 생일의 속편에 불과하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던 날씬한 미란다가 어마어마한 가슴과 엉덩이를 가진 애엄마가 됐다는 사실일 것이다. 미란다가 뚱뚱하다는 이유로 카지노에서 모욕을 당하던 날, 네 친구는 다시 한번 뭉치지만 상황이 정리되자마자 냉큼 흩어진다.

이것은 성장일까, 퇴락일까. <섹스 & 시티>는 나이나 외모처럼 여자에게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가 남자에겐 그렇지 않다는 투덜거림을 반복한다. 나이먹어서 주름이 늘고, 아무도 찾지 않게 될 거라는 건 대부분 독신여성들이 가지는 공포이기 때문이다. 나이든 캐리의 편집장은 그녀 앞에서 팬티만 입을 수 있지만, 캐리는 벌써부터 몸을 드러내기가 싫은 것이다. 그러나 변해가는 캐리의 질문은 여전히 여자들의 문제에 정면으로 파고든다. 다만 그 질문을 던져야 할 관객의 나이가 캐리와 함께 40이라는 무서운 숫자로 다가가는 것뿐이다. <섹스 & 시티>가 여섯 번째 시즌에서 막을 내리리라는 소문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 이상은 캐리도, 사만다도, 미란다와 샬롯도, 우리 모두도 마주하기 힘든 나이다. 그러나 서른 초입에서 출발한 <섹스 & 시티> 대신 관객은 언젠가 마흔에서, 쉰에서 출발하는 인물들과 나란히 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섹스 & 시티>는 여자들에게 비아그라 먹고 섹스하는 법을 가르쳤고, 여자들도 포르노 속 판타지를 현실로 실험해볼 수 있다는 파격을 가르쳤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향해 무언가 질문하는 방식을 가르친 시리즈로 기억될 것 같다.


쿨한 언니들,침실로 돌아오다 <섹스 & 시티> [4]

<섹스 & 시티> 말·말·말

“남자들이 ‘우리’라는 건 자신과 자기 물건이라니까”

그들도 실패한다. <섹스 & 시티>의 화려한 여주인공들이 여자들의 섹스구루(도사) 역할을 하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대목은 바로 그것이다. 아름답고, 직업적 성공도 거머쥔 네 여인. 하지만 그들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바로 불발된 연애의 아픔이다. 미란다는 때로 “왜 우리는 남자 얘기밖에 하지 않는 거야!”라고 게거품을 물기도 하지만 걱정마시라. 그들에게 있어 연애는 한철이지만 우정이야말로 영원한 벗이니까. 남자들은 “바보같아”라고 비웃지만 “어제 그 대사 봤어? 딱 내 얘기야” 하는, 그 금성 여인들의 수다를 엿들어보자.

사만다: 남자에게 “당신을 증오해”라고 하면 사상 최고의 섹스를 하게 되지. 하지만 “당신을 사랑해”라고 하면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될 공산이 크다구.

-캐리가 미스터 빅에게 사랑을 고백했다는 말을 듣고

샬롯: 내가 사귀는 남자에게 문제가 있어. 말하기 그런데… 그 사람 항상… 그걸… 만지는데….
사만다: 쌍방울? 캐리가 말해줬어.
캐리: 깜짝 놀랐어. 그 사람 왜 그래?
샬롯: 몰라. 가만둘 수가 없나봐.
사만다: 여자의 관심을 끌려는 거야. 내 걸 봐라, 하면서.
샬롯: 좋은 가문에 좋은 대학까지 나온 남자가 왜 그러는 거야? 남자는 왜 그러지? 여자들이 자기 성기를 하루 종일 만지고 있다면 남자들 기분이 어떻겠어?
캐리·사만다: (이구동성으로) 좋아 죽지!
-샬롯의 ‘쌍방울을 만지는 남자친구’에 대해

캐리: 미남은 침대에서 별로야. 노력하지 않아도 여자가 많으니까.
-남자를 고르는 법에 관해

샬롯: 어떤 유부남이 내 친구 아만다의 친구 애슐리와 사랑에 빠져버렸대. 이혼하겠다고 했고, 정말 이혼했어. 지금은 결혼해서 좋은 아빠이자 남편이래.
미란다: (냉소적으로) 그런 일은 없어.
샬롯: 뭐라구?
미란다: 여자들이 만든 도시 연애 신화야. 절망적인 연애에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만든 거라구.
사만다: 하지만 더 비참해지지. 그런 마법 같은 사랑은 자기에겐 찾아오지 않으니까.
샬롯: (거의 울부짖으며) 정말이라니까. 영원히 행복하게 산단 말야! 내 친구 아만다의 친구도 그랬어.
사만다: 항상 친구의 친구지. 직접 아는 사람 중에 하룻밤 새 마법처럼 관계가 변한 경우가 있어?
-‘도시 연애 신화’에 대해

사만다: 남자들은 원래 그래. 여자들은 언제나 ‘우리’를 생각하는데, 남자들이 ‘우리’라는 건 자신과 자기 물건이라니까.
-미스터 빅과의 이별에 괴로워하는 캐리에게

캐리: 나 방귀뀌었어.
사만다: (눈을 흘기며) 그럼 딴 데로 가.
캐리: (수건으로 사만다를 때리며) 지금 말고, 미스터 빅 앞에서 그랬다구.
사만다: (안됐다는 얼굴로) 큰 실수했네.
캐리: 그런가?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사만다: 아냐, 넌 여자야. 남자는 우리가 인간이란 걸 몰라. 우린 방귀, 뒷물, 생리, 털이 있으면 안 돼.
캐리: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런 줄 알았어. 우리 관계에 문제가 생긴 거야.
-요가장에서 수다를 떠는 캐리와 사만다

<출처 : 씨네21 김현정 기자, 이다혜 기자>